- 이 건물은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(1768)에 건립한 정자이다. 길재는 고려 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다.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. ‘채미’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.
채미정
소재지 : 경북 구미시 남통동
- 이 건물은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(1768)에 건립한 정자이다. 길재는 고려 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다.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. ‘채미’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.
채미정
소재지 : 경북 구미시 남통동
- 이 건물은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(1768)에 건립한 정자이다. 길재는 고려 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다.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. ‘채미’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.